文字에 관한 Mind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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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字에 관한 MindMap 저자: Mind Map: 文字에 관한 MindMap

1. 표의문자

1.1. 한자

1.1.1. 한자의 기원

1.1.1.1. 전설

1.1.1.1.1. 한자의 탄생에 관해서는 황제(皇帝)때의 사관(史官)인 창힐(仓颉)이 새나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한자는 지금으로부터 5-600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창힐은 생김새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눈이 4개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창힐의 뛰어난 관찰력을 암시한다. 그가 한자를 만들어내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렸고 귀신은 밤에 슬피 울었다고 한다. 창힐의 전설은 인류가 선사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 대한 신화적인 묘사로 볼 수 있다.

1.1.1.2. 도기분호

1.1.1.2.1. 현재 발굴을 통해 확인된 자료 가운데 한자의 탄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력한 자료는 도기(陶器)부호이다. 도기에 새개져 있거나 그려져 있는 이 기호와 그림은 각각 지사자와 상형자의 기원으로 추측된다. 여러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안(西安)반포(半坡)의 도기에서 발견된 기호와 그림이 있다. 그러나 도기에 새겨진 기호와 그림들을 통해서 여러가지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언어를 표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자와의 직접적 관련성을 확언하기는 어렵다.

1.1.2. 한자의 변천

1.1.2.1. 고대문자

1.1.2.1.1. 甲骨文: 지금부터 3천여년 전 상대(商代) 후기 상(商)왕실에서 사용했던 형식을 갖춘 중국 최초의 문자이다. 상왕(商王)의 점복(占卜) 내용을 기록한 갑골문자는 상조시대가 남긴 진귀한 유물 중의 하나이며, 고대 인류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미신을 숭상했던 상대(商代)인들은 국가의 대소사나 일상의 작은 일도 거북이 겁데기나 짐승뼈를 이용해 길흉을 점쳤고, 점을 친후에는 점사(占辞)나 점복과 관련된 여러가지 내용을 갑골에 새겨주었다.

1.1.2.1.2. 金文: 청동기(青铜器)에 새겨진 문자를 일컫는다. 청동기 명문이라고도 물리는 금문은 상대(商代) 전기로부터 나타나며 후기에 들어 크게 발전상을 보이다가 주대(周代)로 고스란히 전해져 주대에는 금문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1.2.1.3. 大篆: 대전의 글자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유물은 석고문(石鼓文)이다. 석고문의 글자를 보면 금문보다 는 뚜렷하게 간화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소전에 비해 덜 정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고문의 글자로 추정해본 대전의 특징은 필획의 굵기나 글자의 크기 등이 통일되고 글자모양이 사각형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1.1.2.1.4. 六国文字: 진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나라에서는 각각 서로 다른 모양의 문자가 사용되었다. 이 여섯제후국에서 사용했던 문자를 육국문자(六国文字) 또는 육국고문(六国古文)이라 한다. 육국고문은 특정한 한 가지 글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주에서 진으로 이어지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 않은 제후국의 글자체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명칭이다.

1.1.2.1.5. 小篆: 전국시대는 중국문자의 발전사상 문자형체와 쓰임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이에 같은 문자를 사용하자는 서동문자(书同文字)정책을 추진하였다. 서동문자란 각 제후국마다 서로 다른 글자를 사용하던 것을 소전으로 통일하자는 정책이다. 소전은 당시 승상이었던 이사(李斯)가 대전의 글자체를 바탕으로 하여 간화와 개량을 거쳐 만든 글자체이다. 이렇게 국가가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한 가지 글자체를 사용하도록 추진한 것은 중국역사에서 통일제국 진(秦)이 처음이었다. 소전은 중국역사상 최초의 공식 규범문자라고 할 수 있다.

1.1.2.2. 근대문자

1.1.2.2.1. 隶书: 소전에서 예서로의 변화는 한자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맹 크고 중요한 이미를 가지는 변화이다. 이 변화를 예변(隶变)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자의 역사를 고문자시대와 금문자 시대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갑골문부터 소전까지는 고문자이고, 예변이후의 문자는 금문자가 되는 것이다.

1.1.2.2.2. 草书: 초서는 한대에 형성되었던 자체의 일종이다. 당대에 이르러서는 특성에 따라 장초, 근조, 광초로 구분하였다. 초서는 예서나 해서와 비슷한 시기에 통용된 보조적인 서체로서 규범적인 글자체의 서사를 빠르고 간편하게 하는 과정에서 나온 필체 또는 필법이다. 초서는 예서가 규범적인 문자로 사용되고 있던 서한(西汉)말엽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고 초서라는 명칭도 한대부터 사용되었기 때문에 실제 등장시기는 해서보다 빠르다고 할 수 있다.

1.1.2.2.3. 楷书: 해서는 한말 예서(隶书)에 이어 흥기한 새로운 서체로 육조이래 진수(真书), 정수(正书)라고 하였다. 해서를 진서 또는 정서라고 한 것은 학습과 활용 면에서 정규서체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후한 중기를 전후하여 공식 서체인 예서에서 벗어서 비교적 간편한 속체가 이루어졌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규범에 맞게 사용하였지만, 일반인들은 이미 편리하고 새로운 속체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1.1.2.2.4. 行书: 행서는 해서(楷书)와 금초(今草)의 중간쯤 되는 서체다. 동적이면서 글자모양이 동적이면서도 글자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행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행서 중에서 해서의 특징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을 행해(行楷)라고 하고, 초서의 특징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을 행초(楷草)라고 한다. 행서는 흘려 쓰면서도 글자 모양에 규칙성이 있는 데다 글자가 연이어 있지 않고 독립적이어서 식별이 쉬운 실용적인 서체이다.

1.1.2.3. 한자의 총수변화

1.1.2.3.1. 동한(AD100): 『설문해자(说文解字)』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9,353자이다.

1.1.2.3.2. 남북조(AD543): 『옥편(玉篇)』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16,917자이다.

1.1.2.3.3. 수(AD601): 『절운(切韵)』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12,158자이다.

1.1.2.3.4. 송(AD1008): 『광운(广韵)』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26,194자이다.

1.1.2.3.5. 명(AD1615): 『자휘(字汇)』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33,179자이다.

1.1.2.3.6. 청(AD1716): 『강회자전(康熙字典)』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47,043자이다.

1.1.2.3.7. 현대(AD1986-90): 『한어대자전(汉语大字典)』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54,678자이다.

1.1.2.3.8. 현대(AD1994): 『중화자해(中华字海)』에 수록된 한자의 수는 87,019자이다.

1.1.3. 한자의 구조

1.1.3.1. 육서설

1.1.3.1.1. 象形: 상형은 한 물체의 형상을 상세하게 혹은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상형자이다. 따라서 한번 보아도 그 물체가 무엇인가 알 수 있게 되는 문자제작 방법이다.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는 象形者, 画成其物, 随体诘诎, 日月是也(상형이라고 하는 것은 그려서 그 물체를 이루는 것이고 형체에 따라 구불구불한 것으로 日•月이 이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설문해자에서 상형을 像之……形 또는 象形으로 나타내었다.

1.1.3.1.2. 指事: 지사는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하여 그려낸 방법이다. 비록 형체를 그렸으나 그것은 허상인 점이 실상이 있는 상형과는 다르다. 지사의 방법으로 만든 자는 지사자이다.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는 指事者, 视而可识, 察而见意,上下是也(지사라고 하는 것은 보아서 알 수 있고 살펴서 나타나는 것으로 上•下가 이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설문해자에서 지사를 像……之形 또는 指事으로 나타내었다.

1.1.3.1.3. 会意: 회의는 완전한 두 개의 글자를 합쳐 한 글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두 자를 합치되 두 자에서 각기 뜻을 귀합해 새로운 의미의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자가 회의자이다.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는 会意者, 比类合谊, 以见指挥, 武信是也(회의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종류를 나란히 늘어 놓고 뜻을 합함으로써 가리키는 바를 드러내는 것으로 武•信이 이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설문해자에서 회의는 从某某 혹은 从某从某로 나타내는데 이 두 구조는 특별한 구별이 없다.

1.1.3.1.4. 形声: 형성은 새로운 언어가 파생되었을 때 의미를 나타내는 한 자와 음을 나타내는 한 자를 택해 합친 방법이다. 문자에 언어를 결부시킨 형성 방법은 중국문자를 영속시킨 매우 획기적인 창안이었다. 이렇게 만든 자는 형성자이다. 형성의 방법이 확고하게 정립되기 까지는 가차나 인신 등에 의해 뜻을 끌어다 썼던 것이 기초가 되었다.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는 形声者, 以事为名, 取譬相成, 江河是也(형성이라고 하는 것은 일로써 이름을 삼고 비유를 취하여 이루는 것으로 江•河가 이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1.1.3.1.5. 转注: 전주는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는 转注者, 建类一首,同意相受, 考老是也(전주라고 하는 것은 종류로 한 부수를 세우고 같은 뜻을 서로 받는 것으로 考•老가 이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전주에 대한 설명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류(类)와 수(首)의 의미도 확실하지 않다. 전주의 정례(正例)는 동음전주(同音转注), 변성전주(变声转注), 첩운전주(叠韵转注가 있다. 전주의 변례(变例(는 둘이나 그 이상의 한자가 자형과 자음이 달라도 부수나 의미가 같아 서로 호훈(互训)되는 경우를 말한다. 동부호훈(同部互训)와 이부호훈(异部互训)가 이에 속한다.

1.1.3.1.6. 假借: 인간의 생활이 날로 발전하면서 언어도 풍부해져 상형, 지사 또는 회의만으로는 언어를 기록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자 대응책이 강구될 수 밖에 없었다. 즉 새로운 언어가 생기면 기존의 글자 중에서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와 사용하였던 것인데 이 방법이 가차이다. 이 때 문자의 의미와는 관계가 없고 단지 음만을 빌려온 것이다.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는 假借者, 本无其字, 依声托事, 令长是也(가차라고 본래 그 글자가 없는데 소리에 의하여 일을 기탁하는 것으로 令•长이 이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설문해자에서 가차는 故为, 故以为, 故借以为, 亦如此, 故谓 등으로 나타냈다.

1.1.3.2. 삼서설

1.1.3.2.1. 表意字: 표의자는 의부자(意符字)라고 할 수도 있다. 글자가 가지고 있는 부호가 오로지 의미부호뿐인 글자이다. 상형, 지사, 회의가 모두 여기 해당한다. '의미부호만을 가진 글자'라는 기준에 따라 하나의 범주 안으로 모인다.

1.1.3.2.2. 形声字: 형성자는 의부음부자(意符音符字)라고 할 수도 있다. 의미를 나타내는 부호와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를 모두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육서에서 말하는 형성의 개념과 큰 차이가 없다.

1.1.3.2.3. 假借字: 가차자는 음부자(音符字)라도 부를 수 있다. 의미부호는 없고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만을 가진 글자이다. 许慎은 본래 해당되는 글자가 없어서 빌려온 것을 가차라고 했는데, 裘锡圭는 본래 글자가 있지만 음이 같거나 비슷한 다른 글자를 빌려 쓴 통가(通假)도 가차와 본질상 차이가 없으므로 여기 포함시켰다.

1.1.4. 예술과 한자

1.1.4.1. 서예

1.1.4.1.1. 古代: 서예의 주요 소재는 해서, 행서, 초서이다. 이왕(二王)으로 병칭되는 왕희지(王羲之,307~365), 왕헌지(王獻之, 348~388) 부자를 비롯하여 구양순체와 안진경체로 유명한 구양순(欧阳询, 557~641)과 안진경(颜真卿, 709~785) 등 역사적으로 알려진 서예가들은 대개 해서, 행서, 초서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다.

1.1.4.1.2. 现代: 서예의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유명인들은 대부분 붓을 다룰 줄 안다. 마오쩌둥(毛泽东, 1893~1976) 글씨는 장성바다링(八达岭) 비석에 남아있고, 장쩌민(江泽民, 1926~)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필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예작품은 거리나 책표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은행(中国银行)은 저명한 문인이자 학자인 궈모뤄(郭沫若)의 글씨로 유명하다. 『현대한어규범사전(现代汉语规范词典)』의 속표지는 언어학자 뤼수샹(吕叔湘)의 휘호이다. 또한 현대에 와서는 오락이나 체육활동의 차원으로 발전한 서예도 있다.

1.1.4.2. 전각

1.1.4.2.1. 전각(篆刻)은 나무나 돌 등에 도장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 도장은 주로 전서로 새겼기 때문에 전각이라는 이름을 붙었지만 지금은 해서나 예서로 새긴 것도 전각이라 부른다. 도장은 상(商)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도장에 글자를 새기는 행위가 실용적 용도에서 분리되어 본격적인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된 것은 대개 명(明)대부터로 본다. 명대에 이르러 도장을 새긴 사람의 이름이 도장에 기록되기 시작했고 전각 유파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전각 이론도 체계를 갖추었다.

1.1.4.3. 서각

1.1.4.3.1. 서각(书刻)이란 금속, 상아, 나무, 돌 등의 재료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전각이 종이 위에 찍기 위한 도장을 새기는 것이라면 서각은 각종 재료 위에 글자를 새겨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전각은 새길 때 글자의 좌우를 뒤집어 새기지만 서각은 그렇지 않다. 전통적으로 편액에 새긴 글자, 각종 기물에 새긴 글자 등이 모두 넣은 의미에서 서각에 포함된다. 현대에 와서는 실용성을 배제하고 이를 보다 더 예술적인 형태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1.2. 이집트 문자

1.2.1. 서체에 따라 신성문자(神聖文字:히에로글리프), 신관문자(神官文字:히에라틱), 민중문자(民衆文字:데모틱)의 3종으로 분류된다. 이것은 한자의 해서체 •행서체 •초서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신성문자는 상형문자이며 고대 이집트의 전 기간을 통하여 사용되었다. 주로 신전의 기둥이나 벽면, 오벨리스크 등에 음각하였으며 왕의 기념물이나 종교관계 서적 등에 사용하였다. 채색된 것도 많으며 예술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신관문자는 신성문자의 윤곽을 흐트려서 주로 파피루스 등에 흘려 쓰는 데 사용하였다. 민중문자는 BC 8세기 이후 일반인이 일상생활에 사용한 것이다.

1.3. 히타이트 문자

1.3.1. 히타이트 상형문자로 작성된 명문들은 흔히 오른쪽 위의 끝에서 문장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문자기호는 표의적이지만, 많은 수의 기호들은 표음적 음절부호이다. 히타이트 상형문자(보다 정확하게는 루비 상형문자)는 대부분 1930~35년에 해독되었다. 히타이트 상형문자와 이집트 상형문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듯하다.

2. 표음문자

2.1. 한글

2.1.1. 한글은 1443년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하여 1446년에 반포한 문자로,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한문을 고수하는 사대부들에게는 경시되기도 하였으나, 조선 왕실과 일부 양반층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이어지다가 1894년 갑오개혁에서 한국의 공식적인 나라 글자가 되었고, 1910년대에 이르러 한글학자인 주시경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갈래는 표음 문자 가운데 음소 문자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한글전용법이 시행되고 있다.

2.2. 알파벳

2.2.1. 알파벳의 각 문자는 여러 개의 자음과 모음 혹은 음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모음이나 이중모음 또는 하나의 자음을 나타낸다. 알파벳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재현할 수 있는 일련의 기호들로 한 언어의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알파벳의 기원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BC 1700~1500년경 지중해 동해안 주변지역에서 생겨난 북셈 문자가 최초의 알파벳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가나안 문자와 아람 문자에서 근대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가 생겨났고, 서양의 알파벳은 페니키아 문자를 거쳐 그리스 문자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언어에서 발음되는 각각의 소리를 단 하나의 기호로써 표기할 수 있는, 이상적으로 완전한 알파벳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19세기 말에 국제음성문자(IPA)가 만들어졌다.

2.3. 가나문자

2.3.1. 가나(仮名)는 한자를 바탕으로, 일본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이다. 현재 쓰이는 것은 히라가나(平仮名)와 카타카나(片仮名)이며 그 밖에 헨타이가나(変体仮名), 만요가나(万葉仮名) 등이 있다. 이름의 유래는 한자를 '마나'(真名)라고 부른 것에 대비되어 지어진 것으로, 처음에는 '가리나'(かりな)라고 읽히던 것이, 점차 '간나', '가나'로 바뀌어갔다. 한자를 음차 표기한 만요가나가 시초다. 가나는 표음문자이며, 기본적으로 한 글자로 한 개의 음절을 표시하는 음절 문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도도부현을 나열하거나 올림픽 경기가 일본에서 열릴 때에는 가나의 음절 순서로 나열한다.